용성대종사께서는 1864년 5월 8일 전라도 남원군(현재 장수군) 하번암면죽림리에서 수원 白氏로 탄생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이한 선사는 산중 수행을 정리하고 1911년 48세 되던 해에 백제불교 초전법륜성지인 서울 서초동 우면산 대성사에 오신 이후, 다시 종로구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해서 수리 개조하여 大覺寺의 간판을 내걸고 불교중흥과 민족중흥를 발원하여 불교계의 혁신작업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는 만해 한용운스님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중 불교대표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4번째 서명하였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 감옥에서 3년간 영어의 생활을 하였다.
1927년 64세 때에는 ≪大覺敎儀式集≫을 발간하면서 往生歌, 勸世歌 등 창작국악조의 創作讚佛歌를 최초로 작시, 작곡하여 이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大覺寺에 일요학교를 설립하여 오르간을 손수 치기도 하였으며, 한문으로 된 불교의식을 한글화하여 불공, 제사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노래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2곡만이 악보까지 남아있으며, 그외에는 가사만 전하고 있다. 대종사 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찬불가의 창시자일뿐만 아니라, 국악조의 창작국악으로 된 창작찬불가를 남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해 함양에 華果院을 만들어 사원경제의 자립을 부르짓는 禪農佛敎를 주창하기도 하였다.
| 건국공로훈장증 | 훈장증 은관문화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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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정부는 우리나라 자주독립에 이바지한 바 많은 고 백용성 선열에게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하여 길이 표창함 |
위는 우리나라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
| 1962년 3월 1일 | 1990년 10월 9일 |
| 대통령 윤보선 | 대통령 노태우 |